이곳은 회원 여러분의 글을 올리시는 게시판입니다. 사진을 올리실때는 사진의 크기를 800 X 450 정도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진크기는 회원분들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조절해 주신후 올리시면 됩니다. 회원가입이 안되신분들은 글을 볼수 있는 권한만 있습니다.

    1994년 1월 1일 새벽 첫날에 멕시코 남부 치아빠스(Chiapas)에서 인디오 원주민들이 주축이 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이 반란의 폭죽을 떠뜨리기 시작했다.   1993년 연말 오하하까 주의 비치 레조트에서 대통령 후보 꼴로시오(Donaldo Luis Colosio) 가족과 함께 살리나스 멕시코 대통령 가족은 신년 파티를 함께 즐기고 있었다.   가족들은 마냥 들뜬 표정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살리나스와 꼴로시오에게 그 순간은 힘들었던 지난 5년을 회상하며 앞으로 열릴 장미빛 미래를 회상하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치아빠스 주에서 게릴라 반군이 산끄리스또발 델 라스 까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시 전체를 인디오 반란군에게 완전히 정복 당했다는 국방장관의 긴급 통화가 대통령에게 전달되자, 파티는 순식간에 종결되었다.  

치아빠스 농민반란 사건은 90년대 개혁의 기수 살리나스 대통령의 명성에 먹칠을 하였던 것이다.   온갖 핍박 속에서 울부짖던 억눌린 인디오들의 '잊혀진 멕시코'(Mexico Olvidado), '거친 멕시코'(Mexico bronco)는 살리나스 정부에 무기를 들고 저항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치아빠스 주의 문화 중심지인 산끄리스또발 데 라 까사스시를 비롯한 알따미라노, 라스 마르가리따스,오꼬싱꼬,옥스축, 우익스딴 그리고 치날 등의 도시 및 600 여개의 마을들을 인디오 반란군이 접수한 후,파죽지세로 멕시코 시티로 향해 진격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치아빠스 반란군은 라깐돈 밀림 1차 선언문(La Declaracion de la Selva Lacandona), 이제 그만!(Ya basta!)을 발표하며, 살리나스 고르따리 정부에 대하여 민주주의, 자유, 정의를 위한 모든 멕시코인들의 전쟁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멕시코 연방군은 밀림전에 탁월한 인디오 반란군에 밀려서 후퇴를 거듭했고, 총격전에서도 패퇴하기 시작하자 전투기를 투입하여 공중폭격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산악전에 능숙한 인디오 반란군에 대항한 멕시코 연방군은 힘을 쓸 수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드디어 살리나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며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용서해 준다는 삐라를 뿌리기 시작했고, 직접 대화를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대화 전제 조건으로 인디오들의 불만 수용 및 인정, 휴전, 연방군의 퇴각 약속, 무차별 공중폭격 중단, 국가 중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그리고 인디오측에서는 리고베르따 멘추(Rigoberta Menchu), 훌리오 쉐러(Julio Scherer), 그리고 사무엘 루이스 대주교를 협상 중재인으로 제안했다.   그리고 정부 내각 개편을 약속했고, 마누엘 까마초 솔리스를 인디오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살리나스 대통령은 연방군의 총격을 금지시켰고, 까마초 솔리스는 협상을 위해 산 끄리스또발에 도착했다.   그리고 멕시코 시티의 소깔로 광장에서는 인디오들에 대한 연방군의 무자비한 무력진압의 중단과 협상을 촉구하는 수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행진이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인디오군도 까마초 솔리스를 환영하게되고 협상을 하게 되면서 살벌했던 전쟁은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전쟁 종식을 위한 서로의 합의가 이루어져서 마침내 종전을 선언하게 된다.

즉각적인 연방군의 투입과 총격전, 공중폭격으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계획적인 은폐로 말미암아 정확한 사상자의 숫자는 현재까지도 베일 속에 감추어지고 있다.   추측으로는 양쪽 모두 약 900 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후속상황

  전면전 양상을 보이던 인디오군과 연방정부군 간의 전쟁은 신뢰 할 수 있는 중재인들의 노력으로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1994년 2월 21일: 인디오와 연방 정부군간에 협상을 시작하여 3월 2일에 34개 조항에 해당하는 협의를 도출하였다.

그러나 여당인 제도혁명당의 대통령 후보인 루이스 도날도 꼴로시오가 암살되면서 정치적 상황이 뒤틀리면서 협의 사항이 어렵게 되는 형국이 되었고, 다시 간헐적인 전투가 지역적으로 빈발하게 된다.


6월 12일:인디오군은 신뢰가 무너진 정부의 기존제안을 거부하면서 대신 시민사회와의 대화를 제안하게 된다.

따라서 인디오군은 제 2차 선언문을 발표하며, 평화로운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민주주의 국민회의(La Convencion Nacional Democracia)로의 구성을 촉구한다.  


6월 16일: 신뢰 할 수 없는 정부의 거듭되는 기만으로, 까마초 솔리스는 위원장직을 사임하였고, 후임으로 호르헤 마드라소가 임명되었다.


8월 9일: 산 끄리스또발시에서 처음으로 인디오군이 소집한 민주주의 국민회의가 개최되었다.   전국에서 약 7800 명의 멕시코 시민들의 참여와 수 백명의 국제 감시단 및 언론인들이 함께했다.  

8월 21일:연방 및 지방 선거가 실시되고 여당인 제도혁명당의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인디오군과 연방군 간의 전운이 다시 감도는 분위기가 치아빠스에 구름처럼 드리우기 시작했다.


10월 12일: 산 끄리스또발에서 두 번째 민주주의의 국민회의가 개최되었고, 인디오군은 평화적인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무성의에 대하여 비판하였고 다시 전쟁의 결의를 다지는 결의대회를 개최하게된다. 

12월 1일: 에르네스또 세디오 신임 대통령의 취임이 있었고 새로운 협상을 위한 국민들의 청원이 이어지게 된다.


1995년 1월 1일: 사빠띠스따 인디오 군은 진정한 자유를 향한 국민운동을 촉구하는 제 3차 선언문을 발표했다.


2월 3일: 게레따로에서 제 3차 민주주의 국민회의를 개최하고 자유를 위한 국민 운동을 재차 촉구하게 된다.


2월 9일: 세디오 대통령은 인디오군 지도부의 신원 확인과 함께 주동자의 검거를 명령하였다.   이에 멕시코 전역에서 인디오 지지자들이 검거되었고, 연방군과 합세한 농장주 산하에 포진해 있던 농장주 사병들은 인디오군을 지원하는 라깐돈 밀림의 원주민 마을에 대대적인 군사적 행동을 재개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약 38000의 원주민들이 자기 살던 고향에서 불시에 쫓게나는 비참한 고통이 함께하게 된다.


3월 1일: 연방 정부와 주정부는 새로운 법 제정을 위한 제정위원회를 만들고, 논쟁과 수정을 거듭하면서 결국 3월 11일에 멕시코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고, 국회에서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가 이루어지면서 4월 5일부터 인디오군과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멕시코 전역에 분포되어있는 인디오 부족 대표들 약 8천 여명이 모여, "계속되는 인디오들을 핍박할 경우", 정부를 상대로 전 멕시코 산악 지대에서로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전 포고가 있었다. 


8월 27일:인디오군은 연방정부와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투표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전국적으로 약 230만 명 정도가 찬성하는 투표에 참석했다.   이후 인디오군과 연방정부는 원주민의 정당한 권리와 그들의 자유로운 문화 생활 보장, 민주주의와 정의, 생활환경 개선책과 발전 약속, 인디오군과의 화해, 인디오 여성들의 권리, 적대성의 중단 등의 6개 위원회로 나누어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1996년 1월 1일: 인디오군은 제 4차 선언문을 발표했다.   인디오군은 권력을 추구하는 기존의 정당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정치세력화를 선언함으로써 무장단체에서 시민단체로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2월 16일: 6 위원회 중 제 1 원주민 권리와 문화 위원회에서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대한 협정' 일명 산 안드레스 협정이 체결되었다.  인디오군은 멕시코 정부와 지속적으로 평화 협상을 시도했고, 산안드레스 협정은 인디오군과 멕시코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 지식인, 시민단체, 멕시코 여러지역에 산재해 있는 인디오 원주민 부족의 대표들이 논쟁과 협상 속에서 얻어낸 결과였다.   이 협정에서 정부는 원주민 공동체의 권리와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약속을 하게 된다.   즉 원주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대표성, 교육 받을 권리, 인권 개선, 기초생활 환경 보장, 생산지원, 일자리 창출, 인디오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 등에 대하여 심사숙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 공동체의 정치, 경제적, 사회문화적, 규범적, 생산적, 사회조직적, 자율성을 인정하였다.  원주민 공동체는 멕시코 사회에서 자율적 실체로 인정받게 된다.


8월 11일: 제 1위원회와 달리 계속해서 난항을 겪던 제 2민주주의와 정의 위원회는 결국 협의가 성사되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인 '산안드레스 협정'을 공식화하는 법률안을 법제화하자는 약속이행을 주저하는 연방정부측의 태도에 격분한 인디오군의 거부로 사실상 협상이 결렬된 것이다.  


11월 29일: 4 개 정당의 하원의원으로 구성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위원회'가 연방 국회를 대표해서 '산안드레스 협정'을 공식화하는 법률안을 기초했다.   이 법률안은 '산안드레스 협정안'을 완전하게 반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디오 민족해방군은 이를 수용했다. 

1997년 에 들어서면서 연방정부는 산안드레스 협정에 대한 법률제정을 어떤 해명도 없이 거부해 버린다.   그리고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특히 지도자에 대한 감찰과 군사적 억압을 암암리에 증대하게 된다.


2월 1일: 약 2만 명의 인디오들이 정부에게 '산안드레스 협정'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며 산끄리스또발에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였지만, 인디오 지지자에 대한 수색, 암살과 탄압은 더욱 더 심해지게 된다.


3월 14일: 연방군과 사병들은 인디오 원주민 공동체를 불시에 습격하였다.   인디오군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80여 인디오 가족이 쫓겨나게 된다.   특히, 여론의 지탄을 피하기 위해서 연방군의 횡포보다 농장주의 사병들의 횡포와 탄압이 극심해졌다.


12월 22일: 인디오 원주민들에게 우호적인 악떼알(Acteal) 마을에서 사병조직원들이 들이 닥쳐 무려 5 시간 동안이나 AK자동 소총으로 성인 여자 21명, 성인 남자 9명, 어린이 14명, 유아 1명 등 모두 45 명의 원주민들을 학살했다.

몇일 후에 인디오군이 연방군 지역 부대를 급습하여 48명을 보복 살해하게 된다.


1999 년  3월 21일: 인디오 민족해방군은 '산안드레스 협정'과 '평화와 화해를 위한 위원회'의 법률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개최했다.   인디오를 지지하는 약 8천 명의 시민들이 자기 마을을 떠나 멕시코 전국을 돌며 원주민들의 정당한 권리와 정의를 위해 국민투표에 참가해 줄 것을 호소했다.   약 5백 만 명의 멕시코 시민들이 투표에 참가해서 정부가 '산안드레스 협정'을 반드시 이행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위원회'의 법률안을 승인할 것을 요구했다.


2000년 12월 1일: 80 여년에 걸친 제도혁명당의 독재를 무너뜨린 민족행동당의 비센떼 폭스(Vicente Fox)가 멕시코의 새 대통령에 당선, 역사적인 취임식을 거행하게 된다. 


12월 5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법률안을 멕시코 연방국회의 상원에 제출한다.   폭스 새 정부는 인디오 문제의 평화적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일부 치아빠스 주둔 연방군을 완전 철수하게 된다.   치아빠스에 주둔한 259 개의 연방군 군사 기지 가운데 국경수비와 상관없이 인디오 주민들을 괴롭혀온 과달루뻬 떼뻬악, 라 가루차, 리오 에우세바, 로베르또 바리오스, 꾹술하, 홀나초흐, 아마도르 에르난데스 등의 군사기지를 폐쇄하고 군대를 철수했다.   1994년 인디오 반란군과의 전쟁 이후 그들을 완전 장악하기 위해 한 쪽에서는 화해와 협상을 그리고 한 편으로는 치아빠스 일대를 완전 포위하는 259 개 병영의 군사력과 경찰력을 동원 655 개의 지리적 지역을 점령해 왔던 것이다.   인디오 군을 완전 포위하는 전략적 장악을 시도했던 것이다.


2001 년 2월 24일: 인디오군 지도부는 연방군이 장악하고 있는 산끄리스또발 데 라 까사스시에서 약 3만 명에 이르는 지지자들과 함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멕시코시티까지 대행진을 위한 출정식을 가졌다.  


3월 11일: 오하아까,뿌에블라, 베라꾸루스, 뜰락스깔라, 이달고, 미초아깐, 껠레따로, 구아나 후아또,멕시코주,모렐로스,게레로 등의 멕시코 주요 주를 거쳐 드디어 멕시코시티에 입성하여 28일에는 연방의회에서 연설하였다. 

현재는 인디오 원주민의 권리가 많이 회복되었고, 기본 요구들이 많이 수용되고 실현되었다. (참고 Luis Hernandes 2003 IP 207)


지면 관계로 선언문과 기타 상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조회 수 :
21810
등록일 :
2014.07.07
19:06:41
엮인글 :
http://lovemexico.net/xe/?document_srl=13429&act=trackback&key=6fa
게시글 주소 :
http://lovemexico.net/xe/?document_srl=13429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9 2. 멕시코 반란/혁명의 시작 관리자 2014-11-22 15733
58 1. 멕시코 반란과 그 반란 이후 재 조감 관리자 2014-08-03 21850
» 멕시코 인디오 반란의 전모와 개요 관리자 2014-07-07 21810
56 6. 멕시코 치아빠스 반란에 대한 결론 관리자 2014-06-07 22842
55 5-2 인디오 원주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과 게릴라 운동의 비교 분석 관리자 2014-04-26 24791
54 5-1 치아빠스 반란의 성격 관리자 2014-04-22 24205
53 그날의 대학살 사건 관리자 2013-12-08 29553
52 4-(2) 멕시코 사회운동의 표출 관리자 2013-12-06 27058
51 4-(1) 치아빠스 반란의 발자취. 관리자 2013-11-17 28509
50 4. 치아빠스 봉기의 객관적 요인 관리자 2013-11-17 29296
49 3-(4)멕시코 농민들의 절망감 관리자 2013-09-10 30330
48 3-(3)원주민 저항활동의 동인(動因) 관리자 2013-09-09 31432
47 어메징 그레이스 관리자 2013-09-05 26563
46 3-(2) 멕시코 농촌 개발 정책 관리자 2013-09-05 30882
45 YM UMA 8기 김한나 image 관리자 2013-08-27 29505
44 YM UMA 8기 관리자 2013-08-27 26864
43 3- (1) 치아빠스주의 농업 상황 관리자 2013-08-17 33083
42 3. 인디오 봉기의 원인과 背景 관리자 2013-08-15 41950
41 2. 치아빠스의 지역적 특성 관리자 2013-07-22 43345
40 1. 인디오 농민군의 반란 관리자 2013-07-20 34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