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회원 여러분의 글을 올리시는 게시판입니다. 사진을 올리실때는 사진의 크기를 800 X 450 정도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진크기는 회원분들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조절해 주신후 올리시면 됩니다. 회원가입이 안되신분들은 글을 볼수 있는 권한만 있습니다.

    1968년에 나타난 멕시코 사회의 균열을 치유하기 위해 에체베리아 대통령 당시 정부(1970-76)가 취한 조치는 재정팽창 정책에 기초한 농업발전 프로그램이었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방향은 공동경작 제도인 에히도 부문을 포함하여 농업부문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토지를 재분배하여 농촌사회의 안정과 성장을 기하자는 데 있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경제의 석유화'가 진행되어 다시 한 번 재정팽창의 기회가 만들어진 로뻬스 뽀르띠요 대통령 정부(1976-82)에 이르러서도 확대 발전되었다.

  에체베리아 정부는 '농촌개발 공공투자 프로젝트'를 만들어 도로건설, 소규모 관개사업, 농민교육 등 포괄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마련하였고, 생산자로부터 직접 생산물을 구매하여 중간상인의 횡포를 차단하려는 조치도 취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소생산자 원조정책 모델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세계은행의 원조를 끌어들일 수 있어서 재정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모은 이 실험은 1980년대에 들어와 실패작으로 판명되었다.   정부의 정책은 기껏해야 '근대화된 생계부문'을 만들어 내었을 뿐이었다.   농촌개발 프로그램은 멕시코 시티의 관가에서 기획되어 농촌에 던져졌고, 관료주도형으로 자리잡았기에 정작 개발 대상인 에히도나 농민공동체는 국가의 부속물 기능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금을 관리하던 관료들의 부패도 심했기에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돌아간 실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치아빠스주에도 1970년대 내내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있었다.  농업부문은 여기에 힘입어 주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5%나 달성하였다.  특히 목축업이 변화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1970년에 200만 두 수준이던 것이 1980년에는 380만 두, 나아가 1983년에는 400만 두로 늘어났다.   바나나와 면화 같은 수출작물도 10년 동안 배로 늘어났다.   이에 힘입어 멕시코의 농산물 수출에서 치아빠스주가 차지하는 비중도 7.7%(1970)에서 12.4%(1980)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도 대부분 대농장주와 목장주에게 돌아가고 에히도 농민들은 피해만 입게 되었다(Burbach and Rosset 1994:9). 

  정부와 세계은행은 신용공여를 통해 에히도 성원과 소농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그러나 목축업에서 가장 위험부담이 큰 송아지 사육 분야에만 이들이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목장주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게 하였다.   정부는 사육에 필요한 보건설비, 기술적 지원, 종자개량 등에는 구체적으로 지원하지 않았기에 가축병으로 쓰러지는 경우 농민은 손실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게다가 송아지 시장은 '구매자 시장'과 다를 바 없이 목장주의 통제 아래 있었기에 가격면에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많은 에히도 농민들은 자신의 땅을 불법적으로 목장주에게 임대해 주고 뒤로 물러나는 수 밖에 없었다.   토지는 다시 목장주에게 집중되었고, 목축지의 확장과정에서 열대우림 지역은 계속 파괴되어 갔으며, 불법적인 임대와 점유도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1970년대는 북동부 치아빠스에 오일붐이 있었고, 그리할바강의 수력댐 사업도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69-71년 사이에 탐사시추가 끝나고 석유를 뽑아 올리기 시작하면서 수천 명의 치아빠스 농민들이 건설, 수송 분야에서 단순 노동인력으로 취업하였다.   석유붐은 이 북동부 지역에 인구를 끌어들였고 주택이나 기본재 그리고 공공 서비스가 결핍된 상황에서 주내의 물가를 자극했다.   게다가 석유붐은 창녀촌, 폭력, 범죄, 음주 문화가 유입되어 인디오 원주민 생활세계에 나쁜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리할바강 댐 사업 역시 양질의 농지 10만 헥타르와 여타 토지 10만 헥타르를 수몰시켰고 여기에 살던 9만 명을 도시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근교 도시에도 점차 인구압박으로 사회적 긴장이 증가하였다.  

  1970년대의 붐경제는 치아빠스 사회의 계급관계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석유회사나 댐공사 건설현장에서 돈을 모은 젊은 원주민 노동자들은 고향에 돌아와 경영형 농사를 짓게 되었고, 그 중 일부는 부농으로 상승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빈부의 차가 크지 않던 전통적 인디오 원주민 공동체 내부에 계급적 위계화가 점차 가시화되었다.  


제임스                                                                              

조회 수 :
98208
등록일 :
2013.09.05
08:31:16
엮인글 :
http://lovemexico.net/xe/?document_srl=13361&act=trackback&key=9a0
게시글 주소 :
http://lovemexico.net/xe/?document_srl=1336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sort 추천 수 날짜
59 Mexico Mission 을 다녀와서 관리자 914103   2012-07-30
YWAM UMA 7기 원윤미(명지대) -멕시코 선교를 다녀와서- 먼저 선교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부어주신 박세목 장로님께 감사드립니다. 장로님 덕분에 편안하고 깨끗한 숙소에서 3박 4일 ...  
58 5-2 인디오 원주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과 게릴라 운동의 비교 분석 관리자 674016   2014-04-26
  사빠띠스따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 호르헤 까스따네다는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게릴라 운동과 비교해 볼 때, 콜롬비아의 게릴라 단체인 M-19와 비슷한 '무장한 개혁주의'(reformismo armado)로 성격지운다. 사실 사빠띠스따 민...  
57 1. 멕시코 반란과 그 반란 이후 재 조감 관리자 551844   2014-08-03
1-1 멕시코 반란을 재 조명해 보면서. "불쌍한 멕시코, 그대는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미국과는 너무도 가까이 있구나!" 널리 알려져 유명해진 이 말은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까지 전제적 독재권력을 휘둘렀던...  
56 6. 멕시코 치아빠스 반란에 대한 결론 관리자 287446   2014-06-07
1) 멕시코에서의 전근대와 탈현대의 충격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의 출현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여러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가령, 전근대화 시대에 있어서 현대성의 문제, 탈혁명의 시대에 무장혁명의 유효성...  
55 박세목 장로님. 전정환 189529   2009-07-14
안녕하세요. 2주전에 뵜던 서장로님 조카 전정환 입니다. 드뎌 가입했습니다. 전에 한번 했었는데 메일이 오질않아서 이제서야 글을 올립니다.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54 멕시코 선교를 다녀와서 (간증문) [1] 김지영 133904   2008-10-24
나는 한국에서 3개월 전에 선교 훈련을 받기 위해 미국에 왔다. 미국에 와서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모두 하나씩 이루어 주셨다. 어느 날 마음속으로 멕시코에 한번 가고 싶...  
53 YM UMA 8기 관리자 103455   2013-08-27
안녕하세요 장로님 uma 8기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인서입니다. 잘지내시죠!!장로님들과 선교사님과 까를로스 목사님과 멕시코에서의 모든 것이 그립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멕시코와 멕시코를 섬기는 분들을 위해 중보하겠습니다 그 ...  
» 3-(2) 멕시코 농촌 개발 정책 관리자 98208   2013-09-05
  1968년에 나타난 멕시코 사회의 균열을 치유하기 위해 에체베리아 대통령 당시 정부(1970-76)가 취한 조치는 재정팽창 정책에 기초한 농업발전 프로그램이었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방향은 공동경작 제도인 에히도 부문을 ...  
51 1. 인디오 농민군의 반란 관리자 93357   2013-07-20
필자가 근무했던 미국 회사의 요청에 따라, 멕시코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집필했던 멕시코에 대한 여러 분야에 걸친 논문들을 발췌하여, 제 1권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책 내용 외에 다른 분야의 논문들을 정리하여 두 번째...  
50 주님의 마음이 거하는 곳으로 ....(새해를 선교로 시작하다) Paula 77780   2009-01-06
어느때와 동일하게 또 다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빠른 시간의 흐름속에 항상 새해가 되면 새로운 각오로 멋지게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각오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항상 그렇게 삶에 쫓기며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  
49 Post Missions Trip to Ensenada, Mexico yellowbird 70171   2011-08-18
Hello, My name is Christine or “Christina” as my brothers and sisters called me in Ensenada, Mexico. I spent three weeks at the Love Mexico Mission Center located in Ensenada with a friend as...  
48 2. 치아빠스의 지역적 특성 관리자 69904   2013-07-22
치아빠스는 멕시코 전체 32개주(멕시코 시티 포함) 가운데에서 가장 가난한 주 중의 하나였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그 당시(1994년 인구) 8천 200만 인구 가운데 2천 600만 명이 절대빈곤의 상태에 처해 있었고, 치아빠스...  
47 3. 인디오 봉기의 원인과 背景 관리자 67802   2013-08-15
 인디오 봉기의 원인 분석에서 정부와 관변 지식인의 입장은 치아빠쓰의 빈곤과 억압을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들기는 하나 결정적인 원인으로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빈곤은 지난 500년 동안 있어 왔고, 여타...  
46 ThanksGiving 을 Love Mexico 와 함께 - 온누리교회 HIS 공동체 hyewon0723 60894   2010-12-13
모든 팀원들이 하나가되어 많은 은혜를 받고 오도록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간단한 바디워십과, 스페이쉬찬양, 전도인사말, VBS craft 등을 준비등을 준비하여 선교길에 나서게되었습니다. 첫날에 도착하여 여정을풀고 캄포...  
45 3- (1) 치아빠스주의 농업 상황 관리자 59830   2013-08-17
  농업발전 모델 연구에서 멕시코 사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멕시코 농업은 1910년 혁명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고 프러시아형의 발전도 아니고 아메리카형도 아닌 독특한 '멕시코의길'(via mexicana)을 걸어왔다. 이러...  
44 경쾌한 복음성가 모음[30곡] movie 모두사랑 59185   2009-06-14
모두사랑  
43 샌안토니오 온누리 교회 우혜정 58212   2008-09-09
해마다 가는 단기선교. 작년에 이어 두번째 참석하게 되었다. 작년엔 그냥 따라가는 입장이였지만 올해에는 선교부를 맡아서 책임감도 컸고 마음의 부담감도 많았다. 선교지를 선택하는데 부터 낙관에 부딪쳤고 , 먼곳을 가기엔 경비나 ,...  
42 4-(1) 치아빠스 반란의 발자취. 관리자 58148   2013-11-17
 치아빠스에서 원주민의 무장반란은 처음이 아니고, 아주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지난 500년간의 역사를 짚어볼 때 치아빠스에서 원주민의 반란은 여러 번 있었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반란으로는 쩰탈(Tze...  
41 단기선교를 다녀와서....(샌안톤니오 온누리교회) 우혜정 58087   2008-09-09
,........ 멕시코와 샌디에고의 접경을 통과하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일인 때문인지 차량의 행렬이 길지 않았고, 우리 일행들의 신분들은 확실했으므로. 국경을 가볍게 통과하자마자 도로변의 풍경들,..축복받은 땅 ...  
40 YM UMA 8기 김한나 image 관리자 56987   2013-08-27
안녕하세요 저는 저번주에 멕시코에 단기선교를 갔던 uma8기 영어영문학과 19살 김한나입니다. 저는 멕시코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년전 캐나다에서 많은 멕시코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아이들은 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