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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0-1821년에 이르는 독립전쟁을 통해서 멕시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했다.   그후 중남미나 멕시코에서 탄생한 스페인 혈통의 끄리오요(Criollo) 계층은 식민지 시대의 법적, 제도적 속박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그당시의 지배계급으로 설 수 있었다.   독립 이후 멕시코 사회는 19 세기 중엽부터 물밀듯이 밀려오는 외국자본의 홍수에다, 한편 인디오 공동체의 토지를 수탈하는 소위 '내부를 향한'  재식민지화의 바람에 그야말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외국 자본가들, 경제와 사회의 근대화를 요구하는 자유전문직업층, 식민지 이전 시대의 공동체적 생산관계를 복구하길 열망하는 인디오 농민들,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면 모든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모든 학문과 사회에 대한 연구까지도 자연과학화 할 수 있다는-  순진무구한 실증주의자들, 꿈꾸는 무정부 주의자들, 맹아기에 있는 노동운동, 학생집단 등은 멕시코 사회의 미래를 두고 서로 투쟁하기에 이르렀다.

   1876-1911년 사이에 전제적인 독재권력을 구축한 뽀르피리오 디아스 정권은 대지주, 은행가, 성직자, 외국자본가들과 연합한 강력한 군부-경찰 독재체제였다.   이 체제는 외국자본을 바탕으로 산업화를 추진해 나가려고 했다.   그 당시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담당했던 일단의 지식인들을 일컬어 '시엔띠피꼬스'(cientificos: 과학자들)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멕시코의 미래는 진보적인 산업화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진보란 곧 산업화를 의미했고, 산업화란 외국 자본을 도입하고 봉건적인 유제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했었다.   아울러 산업화를 위해서는 디아스 정부처럼 강력하고 초권위주의적인 정부가 필히 요구된다고 주장했는데, 요즈음에 많이 쓰는 용어를 빌린다면 , 소위 '개발독재론'이라고나 할까.  -혹자는 말하기를 "고 박정희 대통령이 멕시코 디아스 정권의 정치 철학을 많이 응용하여 실행했다"는 주장이 있다.-      디아스 정부의 개발독재론에 입각하여 19 세기 후반에 미국은 멕시코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1911년 기준으로 멕시코 내 국부총액이 21억 3천만 달러였다면 이 중 미국과 영국이 차지하는 부분이 각각 10억 6천만 달러, 3억 2천만 달러였고, 멕시코 국부는 외국 자본의 손아귀에 완전히 장악되어 있었다.  

   거대한 외국자본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시엔띠피꼬스의 근대화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 당시의 외국자본이 제조업에는 거의 유입되지 않았고, 마진이 높은 광산업이나 환금작물에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세계화되던 독점자본주의의 물결에 종속적으로 편입된 멕시코의 농촌 인구는 그야말로 '초과착취' 속에서 온갖 모순을 감내해야만 했다.   

   1910 년을 기준으로 볼 때 인구의 77.4%가 농촌에 거주하였다.   이 중 1% 미만의 인구가 경작 가능한 토지의 85%를 차지하고 있었고, 96.9%에 해당하는 인구가 무토지 농민들이었다.   농업 문제가 시스템의 작동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인디오 공동체는 멕시코의 근대화를 방해하는 낡은 것이라고 믿고 있던 시엔띠피꼬스의 신념에 따라 디아스 시대의 농업 정책은 대지주들로 하여금 인디오 공동체가 소유한 토지를 수탈하게 하고 이를 집중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인디오 공동체가 고통과 신음 속에서 해체당했고, 인디오들은 뻬온(peon:일종의 머슴처럼 고용된 인부)으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농업 정책은 자연히 인디오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나중 1910-1917 년 사이에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농민반란의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1907 년 미국 경제가 심각한 공황 상태에 돌입하면서 디아스 체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당장 대외 무역 수지가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2 년 뒤는 설상가상으로 농업작황도 흉작을 기록하였다.   몇몇 주에서는 농촌의 기근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뻬온들과 농민들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모순에 더하여 1910 년, 대통령 선거에서 디아스의 재선을 반대하는 정치적 반대 세력들의 움직임도 점점 활기를 떼게 되었다.  

 

3. 폭압 정권에 대한 저항

   디아스 정부가 추진한 종속적 산업화와 개발독재에 대한 저항은 많은 계층으로부터 나왔다.   먼저 자본주의적 합리화의 관점에서 체제를 개조하려는 자유주의 시민 계층에 속한 지식인들은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이들은 소위 '정치혁명'을 통해서 멕시코의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전형적인 대통령을 바꾸고 자유주의적 정치 체제만 확립하면 멕시코 사회의 위기는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반면 중간층 지식인들은 종속적 산업화의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반발하면서 러시아의 나로드니까와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루이스 위스따노 오로스꼬, 안드레스 몰리나 엔리께스, 루이스 까브레라 등은 농민 민중주의적 성향을 보인 대표적인 지식인들이다.   이와는 별개로 정치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일단의 지식인들이 '멕시코민주당'(PLM)을 창당하고, 디아스 체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독재적 권력을 합리화시킨 시엔띠피꼬스의 논리를 비판하였고, 정치적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대토지 소유제와 교권에 대한 안정적 논리를 폈다.   산 루이스 뽀또시 시에서는 리까르도 플로레스 마곤이 주도하는 보다 급진적인 자유주의 운동이 '재생'(Regeneracion)이란 잡지를 통해서 펼쳐졌다.   이러한 흐름은 1906년 7월에 발표된 멕시코 민주당의 강령 속에 잘 표현된다.   디아스 독재체제에 대한 반발은 먼저 재산과 교양을 갖춘 자유주의 지식인 계층에서 제기 되었다.   파리대학과 버클리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바 있는 마데로는 '1910 년의 대통령 승계'란 소책자에서 디아스의 재선을 강력히 반대하였고 공명정대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보장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마데로는 여기서 디아스 체제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정당'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서 멕시코의 정치체제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팽배해 있던 정치적 불만 세력을 급속히 결집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1910 년 4월 재선반대당(Partido Antirreleccionista)이 결성되자 이에 당황한 디아스는 정치적 탄압을 더욱 강력하게 강화하였고 동년 6월 마데로를 체포하여 구금하기에 이르렀다.   우여곡절 끝에 감옥을 탈출한 마데로는 10월 5일에 '산 루이스 계획'(el plan de San Luis)을 발표하고 이미 노골적인 부정 선거를 통해 재집권한 디아스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무장봉기로 대항할 것을 천명한다.   

   대부분의 내용이 헌정주의적 이념으로 채워진 이 '산 루이스 계획'에는 당시 인구의 80% 이상을 구성했던 농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제 3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고 있다.   "자의적으로 빼앗긴 땅은 구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당하므로, 처분과 결정은 개정되어야 한다."   이로써 혁명은 단순히 정부의 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사회 모순의 뿌리인 '토지문제'를 포괄하게 되었다.   

 

앞으로 8 부까지 연재가 계속 될 것인데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중간 중간에 '미국 보다 75% 정도가 저렴하다는 지인의 멕시코 치과 이용 체험기'  멀리 한국까지 방문하여 진료를 받는 의료관광을 할 필요 없이 멕시코에서 병원 싸게 이용하기 등의 이야기를 기고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멕시코 치과는 치료 기술이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인데 가격은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미국 치과 진료비와의 가격 대조표를 기술하면서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을 비교하게 될 것입니다. 

 

James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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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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